그림을 본다는 건 단순히 보는 행위를 지칭할 수도 있지만 그림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작가 연구를 거친 해석과 평가의 단계까지의 감상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림이라는 주관적 대상에 대한 객관적 평가 기준이 존재할까요?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 일일까요? 미국의 미술교육자 펠드먼은 비평 4단계 이론을 통해 언어적 비평 방법을 제시하면서 객관적 미술 감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럼 펠드먼의 비평 4단계는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그리고 그 한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단계: 서술의 단계 (Description)
서술의 단계에서는 외형적인 요소에 대해서만 서술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그림의 제목이 뭔지, 작가는 누구인지, 제작된 시기는 언제인지, 사용된 재료는 무엇인지, 그려진 소재와 장소는 무엇인지 등에 관해서 적어보는 것이지요.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그림에 대한 감상자의 느낌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직관적 감상만 해야 하는 것이죠.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 제목은 무엇인가?
- 작가는 누구인가?
- 언제 제작되었는가?
- 사용된 매체(재료)는 무엇인가?
- 무엇을 그렸는가?
2단계: 분석의 단계 (Analysis)
분석의 단계에서는 좀 더 그림에 요소요소에 파고들어야 합니다. 기법적 특징을 중점으로 보면 되는데, 이때 조형 요소와 조형 원리를 분석합니다. 이 때는 형식상의 분석을 하기 때문에 다음 단계에서 할 해석과 판단의 기준을 세운다는 느낌으로 '표현'을 객관적으로 분해해서 서술해야 합니다. 그림 안에서 정보를 수집한다고 생각하면 좀 더 쉽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조형 요소: 점, 선, 면, 형태, 색감 등의 명암과 질감에 대한 것
*조형 원리: 동세, 균형, 비례, 통일 등의 움직임과 연속성이나 화면 구성의 균형에 대한 것
2단계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해 볼 수 있습니다.
- 그림 속 명암은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 재료의 질감은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 화면 속 움직임은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 화면 구성이 균형을 이루는가?
- 비슷하거나 대비되는 점이 있는가?
- 이 작품의 특징이 무엇인가?
3단계: 해석의 단계 (Interpretation)
드디어 해석의 단계입니다. 3단계는 1,2 단계에서 분석한 내용(기술과 분석으로 얻은 정보)을 토대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즉 숨은 의도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이때 작품의 주제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해석하면 되는데, 작가의 삶(시대상)과 작품의 주제가 잘 연결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정보를 바탕으로 작품의 의미를 발견하는 단계입니다.
여기서는 이런 질문들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 작가가 살고있는 시대적 상황은 어떠한가?
- 작가의 개인적 배경은 어떠한가?
- 작품 속에 시대상과 개인적 배경이 어떻게 들어가 있는가?
4단계: 평가의 단계 (Evaluation)
마지막 단계입니다. 평가의 단계에서는 미술사적 관점에서 봤을 때 작가의 작품만의 차별점을 서술하면 됩니다. 미술사적 의의가 있는지, 미적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근거를 토대로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작품에 대해 느낀 점을 미술사적 관점에서 장단점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미술사적 관점에서의 판단 근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비평가로서의 작품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4단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 이 작품만의 차별점이 존재하는가?
- 이 작품이 가진 한계는 무엇인가?
- 미술사적 관점에서 이 작품만의 포지션을 확보했는가?
- 차별화된 미적 가치를 보유하는가?
- 이 작품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펠드먼의 비평 4단계가 가진 한계
여기까지 펠드먼의 4단계를 통해 감상자는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에서 그림을 제대로 보고 평가하는 '비평가'의 시선을 가지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이론이 그렇듯 여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펠드먼의 비평 방법은 1-2-3-4단계를 거치는 수직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획일적이고 비순환적 사고를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객관적이라는 평가 기준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느낌을 배제시키는 과정에서 감상자만의 직관적 반응이 무시되기도 하고요. 또한 형식주의의 관점으로 평가하게 되면 작품의 맥락적 이해도가 확연히 떨어진다는 단점도 존재합니다.
다만 위와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평가 기준을 토대로 한 정성적 평가이기 때문에 감상자 간의 상호 소통 시 비교적 원활한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또 다른 작품의 비평 시 과거의 비평에서 객관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기도 하고요. 따라서 그림 감상에 있어 체계적인 방법을 추구한다면 펠드먼의 비평 4단계를 사용해 보는 것이 보는 눈을 키우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 타인의 감상법을 쉽게 흡수 할 수 있다는 장점은 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