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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

by arttt 2025. 1. 31.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

The 24th SONGEUN Art Award
 
 
2024.12.17. ~ 2025.2.22.
송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41
 
본선 참여
구나 구자명 김원화 노상호 박종영 배윤환
손수민 송예환 안유리 얄루 업체 오묘초
유아연 이승애 이혜인 조재영 진민욱 최장원
추미림 탁영준
 
대상
탁영준
 
 
송은문화재단의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에 다녀왔다. 대상을 받은 탁영준 작가의 영상 작업이 좋았다는 후기가 많이 들려왔고 그래서 정말 기대되었던. 이번 송은대상전을 보고 인간과 기술 그리고 창작의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예술가가 예측하는 미래 그리고 현재의 쓸모 사이에서 각 예술가들이 작두를 타는 걸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신선했던 거 같다.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이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예술로서 존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기술을 전제로 한 삶을 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지가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져 안도하게 된다. 
 

 

 

 
최장원
⟨행려자(行旅者)의 파빌리온: 일시성과 가벼움에 관하여⟩
2024
알루미늄
520x720x360cm (가변크기)
 
 

 
최장원은 건축적 요소를 해체하거나 내재된 조형성을 촉각적인 환경 속에서 재맥락화하며 장소적 의미를 확장시키는 작업을 한다. <행려자의 파빌리온>은 기존 건축 문법을 해체하여 기하학적인 조형으로 재구성한 작업인데 첫눈에 보자마자 인디언의 집 같기도 하고 우주 부품 같기도 한 커다란 외형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슬아슬한 꼭짓점끼리의 맞닿음이 마치 고대와 미래의 만남 같기도 하고, 차가워 보이는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마냥 조각이 아니라 건축물로서 다가왔기 때문인 거 같다. 작품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며 광활한 대지 위에 설치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탁영준
⟨월요일 날 첫눈에 똑떨어졌네⟩
2024
단채널 HD 영상,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19분 59초
노르웨이 필름 인스티튜트, 외스트노르스크 필름센터,
버거 컬렉션, 뢰브 필름 후원
 
 

 
탁영준은 퀴어 정체성과 종교적 신념, 특수한 장소성을 이질적으로 교차시키는 방법으로 영상, 조각, 평면 작업을 한다. <월요일 날 첫눈에 똑떨어졌네>는 컨템포러리 댄스 필름 연작의 세 번째 작품. 노르웨이 저술가 라스 뮈팅의 소설 [자매 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구전된 사랑의 이야기를 얽혀나가는 안무 조각으로 엮어낸 이번 필름은 연쇄적인 재창작의 과정을 몸짓과 공간으로 보여준다. 표현 대상이자 수단으로써의 몸짓을 영상으로 조각내어 교차시킴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끈질기게 추적하는 느낌을 주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오묘초
⟨딱 걸린 진화의 현장⟩
2024
유리, 알루미늄, 서지컬 체인, 은, 황동, 괴목, 수석, 레진
가변크기

 

 

 
오묘초는 직접 쓴 소설에 기반한 조각, 설치, VR작업을 한다. 늘 아름다운 잔혹동화 같은 내용일 거라고 지레짐작했었는데 공상과학 소설에 기반한 미래의 지성체들이 제안하는 대안적인 생존법을 현재의 시제로 시각화한 작업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기계에 종속적이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매체들로 추출해 낸 미래의 기억을 보는 느낌이랄까. <딱 걸린 진화의 현장>은 도래할 종말을 상상하면서 파괴된 현실을 딛고 새롭게 자랄 생명의 서사를 그렸다고 한다.

 

 

 

진민욱
⟨봄조각⟩
2024
실크, 리넨에 먹, 분채안료, 동물성아교
210x448cm
 
진민욱은 동양화로 일상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소외된 주변적 서사를 그려낸다. 전통적인 소재를 선택하면서도 자동기술적 조형 과정을 통해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전형성에서 벗어난다.

 

 

 
구자명
⟨소프트웨어 빼돌리기(고려항공)⟩
2024
백동봉, 알루미늄 파이프, 스테인리스 스틸,
클램프, 케이블 타이
100x140x90cm
 
⟨소프트웨어 빼돌리기(미래를 위하여: 송사리,
로동신문: 인간, 벗: 고양이, 남산: 노랑초파리)⟩
2024
알루미늄에 UV인쇄, 종이에 인쇄
가변크기

 

 

 
구자명은 소프트웨어의 형태를 조각으로 물질화하는 작업을 한다. <소프트웨어 빼돌리기>는 북한의 선전 웹사이트 속 코드 구조를 단백질과 DNA로 변환시킨 작업이다. 작품은 코드의 출처와 내용을 은폐하거나 재구성해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끔 만들고 HTML 태그를 생물학적 언어로 변환시키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재맥락화한다.

 

 

 
노상호
⟨홀리-중력과 은총⟩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270x500cm
 
⟨홀리-중력과 은총⟩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나무에 3D 레진프린팅
300x130x105cm
 
⟨THE GREAT CHAPBOOK 3⟩
2024
캔버스에 유화
27x21cm
 
 

 

노상호는 온라인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한다. 동시대 이미지가 소비되고 창작되는 양상을 디지털 글리치와 아날로그 회화라는 물리적 차이를 시각화해 드러낸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오가는 일상적인 감각으로 치환한 이번 작업들은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글리치 이미지를 그려내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를 드러낸다. 고해소를 재현한 커다란 조각은 중간에 뚫린 구멍 뒤편에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의자에 앉아서 보면 반대편 영상을 보는 사람이 지옥문에 갇힌 거처럼 보일 거 같다는 상상을 하게 만들어서 신선했다. 

 

 

 

업체
⟨d.raft⟩
2024
티셔츠, 벽면 시트지
가변크기
 
업체는 김나희, 오천석, 황휘가 결성한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콜렉티브다. 신기술과 초자본주의적 환경 틈에서 간과된 내러티브를 건져 올리는 작업을 한다. ⟨d.raft⟩는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합의가 이뤄지는 방식과 종교 집단이 계시를 받아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상동성을 환각적으로 그려낸 그래픽 노블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종류의 진위 판단이 프로토콜에 따른 합의의 산물임을 암시한다. 

 

 

 

유아연
⟨Elevator⟩
2024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PLA, 볼트, 너트, 퍼티, 아크릴 도료
355x190x70cm
 
⟨Escalator⟩
2024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PLA, 볼트, 너트, 퍼티, 아크릴 도료
355x190x95cm

 

 

 

유아연은 신체를 오브제로서 배치해 수동적으로 답습되어 오던 이미지 유통 방식을 재고찰 한다. 작가는 개인의 특수성이 자본주의에 의해 기형적으로 상품화되고 소비되는 것에 대해 작업하는데 이번 작업들은 자본주의의 유통망에서 탈주하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스크롤을 내려 데이터를 가소적 형태로 변환시키는 'scrolling'과 견고한 스크린 밖으로 미끄러지는 'slippnig'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제안한다. 조각에서 직접적인 움직임을 볼 수 없어 의아스럽긴 했지만 이미지를 대하는 작가의 고찰이 좋았다.

 

 

 

배윤환
⟨3시에 추는 춤⟩
2024
단채널 영상
13분 22초
 

 

 
배윤환은 지구를 인격화해 개인과 환경이 대등하게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이미지와 영상으로 만들어낸다. 작가는 되풀이되는 일상의 틈 속에서 비롯된 우연으로 전개되는 비선형의 소설이라는 발상으로, 제주도의 자연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상 속 구르는 돌과 반복적 행동을 하는 두더지를 교차시켜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삶의 임의적인 양면성을 이미지화하고 개인의 일생을 미시적 생태계로 간주한다. 처음엔 귀엽네 하고 보다가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보았던 작업인데 영상 속 교차되는 드로잉 영상 장면들이 특히나 좋았다. 영상을 아름다움과 동일시하지 않고 이미지의 언어로서만 존재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신선했다. 쉬워 보이게 만드는 게 진짜 어려운 건데.

 

 

송예환
⟨정지된 정보의 바다⟩
2024
골판지 위 웹사이트 프로젝션 매핑
300x270x270cm
 
 

 

송예환은 비디오 설치 작업을 통해 디지털 매체의 허점과 권위주의를 폭로한다. <정지된 정보의 바다>는 제한된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시대의 인터넷 사용자들을 '웹서퍼'로 비유하고 서퍼가 가라앉고 있는 수면 아래의 세계를 규격화된 웹공간으로 시각화한 설치 작품이다. 웹서퍼는 질문을 던지는데, 그 질문조차 인터넷을 통해 한다는 점에서 무력한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ai 시대의 우리에게 이보다 더 직접적인 질문이 있을까.

 

 

 

추미림
⟨Pixel Space⟩
2024
영상 설치
가변크기
 

 

 

추미림은 위성지도를 조형적 언어인 평면, 영상, 설치 등으로 환원시킨다. 작가는 데이터 기반 사회의 내부 구조를 픽셀과 패턴으로 드러내고 디지털과 도시라는 이질적인 두 환경에서 추출한 도형들을 충돌시키거나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처음엔 게임인가 하고 한참을 바라봤더니 위성을 분단위로 그래픽화한 작업이라고 설명해 주셔서 다시 보게 되었는데 희한하게 눈을 뗄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위성사진을 보면서 내가 어디쯤 왔을까 헤아려보는 그 느낌.

 

 

 

조재영
⟨쌍둥이 정원⟩
2024
골판지, 접촉지, 천, 실, 금속 프레임, 아크릴, MDF, 체인
320x360x230cm
 
조재영은 중간자적 존재들을 신체에 빗대어 기하학적인 형태의 도상 조각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한다. 신체의 일부를 조각내 걸어둔 느낌이었는데 각각의 조각들은 완성되지 못한 채 공중을 부유하지만 바닥에 안착하진 못하고, 그러면서도 철근 구조 안에 하나로 묶여있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서커스 같기도 하면서 정육점 같기도 한.

 

 

 

이혜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024
리넨에 오일
2점, 각 250x230cm
 
이혜인은 특정 장소나 인물을 작가의 개인 경험과 중첩시켜 화면 위에 표현한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작가가 어린 시절 익숙하게 보아온 재래시장 골목의 가게들을 그렸다. 밤의 주점과 유흥업소는 거의 1:1 스케일로 굉장히 큰 사이즈로 그려졌는데 그 때문인지 문을 열고 혼란스러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김원화
⟨인간의 거울⟩
2024
실시간 생성 영상 설치, 거울, VVVV, Llama
300x285x600cm
 
 

 
김원화는 급속도로 발달한 기술이 모호성을 띠는 지점을 가시화하며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기반의 작업을 한다. <인간의 거울>은 한 명씩 커튼 뒤 공간 속으로 들어가 AI가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과정으로 이뤄져 있는데, 인공지능은 관람객을 판단함으로써 인간으로부터 판단의 주체성을 빼앗고, 관람객은 인공지능의 판단 결과물을 시청각적으로 보고 듣는다. 뭔가를 기대하고 들어갔던 거 같은데, 막상 들어가면 뭔가 얘기해 주긴 하는데 잘 안 들려서 아쉬웠다. 내가 원하는 걸 쥐어주지 않는걸 애초에 의도한 걸까?

 

 

박종영
⟨Marionette 14-Multi Persona⟩
2024
월넛, 미송, 아두이노 보드, 서보모터, 전기모터, 맥미니,
블랙박스 카메라, 동작감지센서, 샹들리에, 소파
가변설치
 

 

 

박종영은 디지털 환경에서 제기되는 문제의식을 설치 작업으로 확장시켜 인간의 정체성과 자유 의지가 조작되는 양상을 조명한다. 이번 작업은 감시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멀티 페르소나가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작가는 화면에 얼굴이 인식되게 함으로써 작품 속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이는데 가면을 고르는 움직임을 통해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직접적으로 재현한다. 
 

 

 

구나
⟨상아뼈그레이보철정물화⟩
2024
FRP, FRP 퍼티, 알루미늄
135x30x202cm, 91x35x214cm
 
⟨상아빛브라운블랙초상화⟩
2024
알루미늄, FRP 퍼티, 라텍스, 오브제
900x60x60cm
 
⟨블루블루스물빛실물⟩
2024
돌, 물, 석분토
41x107x122cm
 

 

 

구나는 기존의 언어와 인식체계로는 구현이 어려운 이해의 공백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한다. 특히 개인적인 서사에 기반해 결핍이 동반한 신체의 한계를 추상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이번 작품은 신체의 고통, 결핍의 수용,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성, 이해와 돌봄 그리고 실천 사이를 각기 다른 물성을 가진 재료를 결합해 보인다. 엮어진 게 무언가 고개 들어 보았더니 풀어헤쳐진 게 삶인가 보다, 아니 살인가 보다 했던.

 

 

 

이승애

⟨The Hunters⟩
2024
단채널 비디오, 종이에 흑연
애니메이션: 5분, 종이 드로잉 12점: 각 54.5x78.8cm

 

 

 

이승애는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대상들의 실체를 이미지화하기 위해 영혼의 존재를 정립해 가는 과정을 드로잉, 영상, 설치로 풀어낸다. 이번 영상 작업에서는 시베리아 설화를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대치함으로써 새의 상징성을 재사유한다.

 

 

 

안유리

⟨은막(銀幕)의 방랑자⟩
2024
단채널 영상
9분 27초

 

안유리는 개인의 삶 그리고 시공간의 변화와 간극을 텍스트, 비디오, 사운드 등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영상은 국가와 시대의 요구로 극명히 다른 페르소나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두 명의 실존인물인 '야마구치 요시코'와 '가와시마 요시코'를 조명한다. 연극적 허위는 무대 위에서 진실과 끊임없는 전쟁. 연극을 진짜처럼 한다 해서 그것이 삶이 되지 않고
삶이 그렇다 하여 연극적 허위보다 진실되다 말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생각이 들었던 작업.

 

 

손수민

⟨언더그라운드⟩
2024
단채널 비디오
7분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가도약지원

 

⟨뮤직박스⟩
2024
퍼포먼스, 금속
퍼포먼스 영상: 2분 45초, 설치: 120x30x30cm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가도약지원

 

 

 

손수민은 현대사회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다각도로 탐구한 영상, 설치, 퍼포먼스, 출판물 작업을 한다. <뮤직박스>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뮤직박스를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연주하는 장면을 담고, <언더그라운드>는 자본주의 사회가 초래한 개인의 고립과 소외를 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그 자체로 그쳐선 안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남았던...

 

 

 

내가 갔던 날은 얄루 작가의 작업이 보수 중이어서 보지 못했다. 영상 작업이 많아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니 조금 여유 있게 가는 걸 추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는 작가, 어떻게 하면 기술에 종속되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작가, 오래된 매체로 수행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 이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로 나아가보자고 말한다. 사전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갔는데도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했던 작업들이 많았다. 조용히 혼자 가서 보고 와도 좋을 거 같고, 이야기 나눌 누군가와 함께 가서 보고 와도 좋을 거 같다. 전시는 2월 22일까지!